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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중원(中原)을 걷다 1 - 조민환 교수와 제자 30인의 하남성 인문학 답사기

관리자 2026-01-29 조회수 50

[특별기획] 퇴임 후에도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학문 여정
프롤로그: 평생의 스승, 평생의 제자
글 · 사진 김덕기 박사


 

지난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5박 6일간 중국 하남성(河南省) 일대를 누비는 특별한 답사단이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평생을 동양철학 연구에 헌신한 조민환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 29명으로 구성된 '중원 인문학 답사단'이 그 주인공이다.

 

                          [조민환 교수]

조민환 교수는 1976년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 입학한 이래 반세기 가까이 동양철학의 길을 걸어온 학자다. 도가미학(道家美學)과 동양예술철학 분야의 권위자로, 10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며 한국 동양미학 연구의 지평을 넓혀왔다. 노자와 장자의 미학사상, 서예미학, 동양예술정신 등에 관한 그의 연구는 국내외 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교수직에서 퇴임한 뒤에도 그의 강의실은 닫히지 않았다. 조 교수는 매년 한 차례씩 제자들과 함께 중국 현지 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책에서 읽은 사상이 실제로 어떤 땅에서 피어났는지, 그 현장을 직접 밟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그의 철학이 담긴 프로젝트다.

"동양철학은 서재에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현들이 걸었던 길을 직접 걸어봐야 그 사상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지요.“

이번 답사의 목적지는 중국 문명의 요람인 하남성. 정주(鄭州), 낙양(洛陽), 안양(安陽), 개봉(開封)을 아우르는 여정이었다. 심상영 대표가 이끄는 여행사의 세심한 준비 아래, 현지 가이드와 5박 6일 내내 함께한 전담 운전기사까지 합류하여 최적의 답사 환경이 갖춰졌다.


 

 

제1부: 청명상하도를 마주하다, 관우의 무덤에 서다

2026년 1월 19일 (월) | 인천 → 정주 → 낙양

오전 9시, 인천국제공항. 삼십 명의 답사단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민환 교수를 필두로 한 일행은 중원의 심장 정주를 향해 이륙했다.

공항 통로에서 시작된 첫 강의: 청명상하도의 비밀

정주공항에 도착한 일행이 출국심사장으로 이동하던 중, 통로 벽면에 걸린 거대한 그림 한 점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북송(北宋)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의 복제품이었다.

조민환 교수는 그 자리에서 즉석 강의를 시작했다.

"이 그림의 핵심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교수의 손가락이 그림 중앙의 무지개 모양 나무다리를 가리켰다. 홍교(虹橋)라 불리는 이 다리 아래로 배가 지나가려 하고,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이 밧줄을 내리며 아우성치는 장면. 천 년 전 개봉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몇 명인지 아세요? 814명입니다. 저마다 다른 표정, 다른 삶을 살고 있지요.“

한 제자가 그림의 한 모서리를 가리켰다. 검은 갓을 쓴 인물이 눈에 띄었다.

"교수님, 저 사람 갓 쓴 것 같은데요?“

조민환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합니다. 학계에서는 저 인물이 고려 상인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요. 북송과 고려는 활발히 교역했거든요. 천 년 전 그림 속에서 우리 선조의 흔적을 발견하는 셈이지요.“

이 청명상하도의 실제 배경인 개봉은 답사 5일째 되는 날 방문할 예정이었다. 공항 통로에서 시작된 예고편은 일행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10년 만의 대설, 눈 덮인 관림

점심 식사 후 버스는 서쪽 낙양을 향해 달렸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화북평야의 광활함에 감탄하던 중, 하늘에서 흰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낙양에 10년 만에 내리는 대설이랍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차내가 술렁였다. 10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천지를 뒤덮었다.

버스가 관림(關林) 앞에 멈춰 섰을 때, 일행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붉은 담장과 고색창연한 전각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관림은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의 머리가 묻힌 무덤이다. '림(林)'은 성인의 무덤에만 붙이는 명칭으로,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 관우에게 합당한 이름이다.

 

서기 219년, 손권에게 참수된 관우의 수급은 조조에게 보내졌다. 조조는 적장이었음에도 관우의 충의를 기려 향나무로 몸체를 조각하고 제후의 예로 장사 지냈다. 그래서 관우의 머리는 이곳 낙양 관림에, 몸은 당양(當陽)의 관릉에 각각 잠들어 있다.

 

명나라 만력 20년(1592년)에 현재와 같은 웅장한 묘역으로 정비되었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나무에 묶어두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행히 복원되어 현재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AAAA급)로 지정되어 있다.

눈 덮인 관림에서 답사단은 오랜 시간 머물렀다. 천팔백 년 세월을 건너 관우라는 이름 석 자가 눈보라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두강주(杜康酒), 조조의 술잔을 기울이다


저녁, 낙양 시내 숙소에서 일행은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낙양의 명주(名酒) 두강주(杜康酒)가 올라왔다.

 

두강(杜康)은 중국 전설에서 술을 처음 빚은 인물로, 조조의 시 「단가행(短歌行)」에 등장하는 바로 그 술이다.

何以解憂 唯有杜康 (무엇으로 근심을 푸는가, 오직 두강주뿐이로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장강의 뱃머리에서 이 노래를 읊조렸던 조조. 그리고 오늘, 그가 예를 갖춰 묻어준 관우의 무덤 앞에서 같은 술을 마시는 답사단. 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영웅들의 시대로 잠시 들어선 기분이었다.

 

조민환 교수가 잔을 들었다.

"오늘 우리는 눈 덮인 관림에서 충의(忠義)의 화신을 만났습니다. 앞으로 닷새, 중원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땅을 함께 밟아봅시다.“

삼십 명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낙양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제2부는 정자의 사원, 정문립설(程門立雪), 눈 속에 선 제자로 이어가겠습니다.

 

글 · 사진 김덕기 박사

                                 [김덕기 교수]
                                 [김덕기 교수]

약력

寒栢 金德起
● 法學博士 / ● 不動産學博士

● 국대학교 법무대학원
- 도시정비법무/건설개발법무전공 주임교수

●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부동산법∙정책연구원
- 재개발∙재건축 연구센터장
- 시니어산업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