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퇴임 후에도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학문 여정
제2부: 정문립설(程門立雪), 눈 속에서 스승을 기다리다
2026년 1월 20일 (화) | 낙양 → 이정서원 → 이정묘 → 소옹묘 → 낙양성
글 · 사진: 김덕기 박사

10년 만의 대설
둘째 날 아침, 눈을 떠 창밖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젯밤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로비로 내려가니 이미 여러 단원들이 모여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이드가 다가와 말했다.
"낙양에 이 정도 눈이 내린 것은 10년 만입니다.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그때 조민환 교수님이 로비로 내려왔다. 창밖의 설경을 한참 바라보던 교수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이 어디입니까?"
제자들이 대답했다. "이정서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문립설(程門立雪)의 현장이지요. 천 년 전 제자들이 스승을 기다리며 무릎까지 눈을 맞았다는 바로 그곳에, 10년 만의 대설이 내렸습니다."
교수님이 창밖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이 우리를 위해 무대를 마련해준 것 같군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버스가 이정서원(二程書院) 앞에 멈춰 섰을 때, 모두가 말을 잃었다.
서원 전체가 눈에 파묻혀 있었다. 붉은 담장 위로 소복이 쌓인 흰 눈,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그리고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발자국 하나 없는 순백의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가이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 방문객입니다. 폭설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았나 봅니다."
천 년 역사의 서원. 그 위에 소복이 쌓인 순백의 눈. 그리고 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게 된 서른 명의 답사단. 가슴이 뛰었다.
조민환 교수님이 앞장서서 눈길을 밟았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제자들이 한 줄로 그 뒤를 따랐다. 서른 개의 발자국이 눈 위에 선명하게 찍혀갔다.
마치 천 년 전, 이곳을 찾았던 선비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이정서원(二程書院)
이정서원, 또는 이정고리(二程故里)라 불리는 이곳은 북송(北宋) 성리학의 양대 거봉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기리는 서원이다.
형 정호의 호는 명도(明道), 동생 정이의 호는 이천(伊川)이다. 이 두 형제의 사상은 훗날 주희(朱熹)에 의해 집대성되어 성리학(性理學)의 근간이 되었다. '정주학(程朱學)'의 '정(程)'이 바로 이 두 형제를 가리킨다.
서원 입구에서 조민환 교수의 설명이 시작했다.
"정호와 정이 형제는 이곳 낙양 일대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특히 정이 선생은 낙양에서 강학(講學)을 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요. 그의 학파를 '낙학(洛學)'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눈 덮인 서원 안으로 들어서자 고즈넉한 정취가 온몸을 감쌌다. 오래된 건물들, 그 사이로 난 작은 길들,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녹은 눈물. 모든 것이 눈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강당(講堂) 앞에서 교수님이 발길을 멈추었다.
"이곳이 정이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정이 선생은 배움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學者須敬守此心 不可急迫 當栽培深厚 涵泳於其中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이 마음을 공경히 지켜야 하며,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마땅히 깊고 두텁게 가꾸어 그 속에서 헤엄치듯 해야 한다.
"'함영(涵泳)'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주십시오. 물속에서 헤엄치듯, 학문 속에 깊이 잠겨 천천히 음미하라는 뜻입니다. 요즘처럼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시대에 새겨들을 만한 말이지요."
천 년 측백나무 앞에서
서원 깊숙이 들어서자 우뚝 선 거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령 천 년을 헤아린다는 측백나무였다. 눈을 뒤집어쓴 채 꼿꼿이 서 있는 그 모습에 모두의 발길이 멈추었다. 굵은 줄기는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가지 끝의 푸른 잎은 여전히 생기를 잃지 않았다.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도 변치 않는 푸르름.
그것이 바로 측백이 상징하는 '절개(節槪)'였다.
교수님이 측백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정호 선생도 이와 통하는 말씀을 하셨지요. '君子之學 死而後已(군자지학 사이후이)', 군자의 학문은 죽은 뒤에야 그친다."

교수님이 눈 덮인 측백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평생을 멈추지 않는 것. 추위에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선비의 도리입니다."
그 순간, 나는 측백나무 앞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한백(寒柏).'
속으로 내 호(號)를 되뇌었다. 얼마 전 따로 한학을 사사하는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이름이다. 추위 속의 측백나무. 그때는 그저 아름다운 이름이라 생각했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천 년을 버텨온 이 나무. 정호와 정이 두 분이 강학하시던 그 시절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 유조와 양시가 무릎까지 눈을 맞으며 스승을 기다리던 '정문립설'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본 나무.
조민환 교수님의 답사에 참여하게 된 것도, 하필 10년 만의 대설이 내린 날 이곳을 찾게 된 것도, 그리고 '한백'이라는 호를 받은 내가 천 년 측백 앞에 서게 된 것도.
어느 것 하나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정호 선생은 말씀하셨다.
天下之理 原其所自 未有不善
천하의 이치는 그 근원을 따져보면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에는 이치가 있고, 그 이치는 선(善)을 향한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그런 이치의 일부일 것이다.
나는 측백나무 줄기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차가운 껍질 아래로 천 년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천 년을 버텨온 이 나무처럼, 나도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소리 없이 나무에게 절을 올렸다.

정문립설(程門立雪)의 현장
측백나무를 지나 서원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작은 비각(碑閣)이 나타났다. 바로 '정문립설(程門立雪)'의 고사가 탄생한 장소였다.
조민환 교수님이 발길을 멈추고 일행을 둘러보았다.
"여러분,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현장입니다